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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수 있나요
운영자 2017-04-04 추천 0 댓글 0 조회 96

설교본문 마6:14~15 설교제목: 무엇을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모든 성도들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특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합니다.

특별하다는 것은 특별하게 생겨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고, 영생을 누릴 수 있으나 믿지 아니하면 그 무엇도 누리지도 못하고 소유하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합니다.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은 어렵지 않게 예수를 믿습니다. 그리고 믿어져요. 신앙생활을 아주 잘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전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믿어지지 않으니 믿지 않아요.

그러니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한 바가 있습니다.

(13:46~49)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복음의 메시지는 어느 한쪽만을 향하여 전한 것이 아닙니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 앞에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상당한 시간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였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나누어졌습니다.

복음을 받아드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복음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바울사도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고 구원받을 때가 그에게 이르렀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둘째는 믿고 구원받을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대상이 아닌 이들은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사람에게 억지로 되지 않는 일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주를 믿는 일은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복을 전하실 때 사람들이 믿는 않는 것을 보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6:1~6)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으면 복입니다. 믿으면 은혜입니다. 믿으면 구원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이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나를 지명하신 분이 계시니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택하신 분이 계시니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부르신 분이 계시니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나 입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백성들에게만 해당합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오히려 역천의 길을 간 것입니다.

불순종의 길을 갔고 거역의 길을 간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불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 향하여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점덤 더 멀리 하나님과는 멀어집니다. 그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16:12) 너희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16:47)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하지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멀어지는 불의의 삶을 사는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구원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은혜의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주안에서 믿음에 선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본문말씀입니다.

용서하는 일입니다.

용서하는 일이 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대상에 따라 용서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용서는 가벼운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테반이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집니다. 짓밟습니다. 잔인하게 죽입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 그런데도 스테반은 그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힘이고 능력입니다. 나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힘과 능력은 용서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대한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21~22)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고 하셨습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능력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사람입니다.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하였습니다.

(3:13~14)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용서의 의미가 큰 것은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사람이 사람의 대하여 용서를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무의미하게 하는 일입니다. 용서를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행합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 싫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명의 해를 끼친 사람, 재산의 많은 해를 끼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손해를 끼친 사람을 사랑하는 일, 나에게 파멸을 끼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은 나의 힘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중죄를 지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 석의 자리에서 재판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판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판사는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한 학교 다닐 때의 친구였습니다. 자기 친구는 판사이고 자기는 그 재판 석에 죄인으로 서게 된 것입니다. 그 재판은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증인이 와서 죄에 대해서 증언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판사가 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판사와 죄인은 그 자리에서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정에 있는 사람들은 판사가 어떻게 판결을 내리는가 하고 기다립니다. 이 사람이 중벌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가볍게 내릴 것인가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선고를 기다립니다. 판사가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가 선고한 판결은 법이 정한 가장 중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 죄수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아주 많은 벌금이었습니다.

이제 그 벌금을 내든지 아니면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청중들은 그 선고가 너무 가혹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 자기 친구에게 저렇게 할 수가 있을까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정의의 법정에서 볼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판사가 자기 자리에서 내려와서 죄수가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손을 내밀어서 그 죄인의 손을 잡고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그 벌금을 자네 대신 물어주겠네.” 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그 죄인은 친구 판사 때문에 자유롭게 해방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죄값을 지고 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이 귀한 것이고,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죄인된 인생들을 품은 사랑입니다.

죄와 허물과 문제가 너무 많아 사랑도 용서도 불가능할 만큼 부끄럽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덮으시고 우리를 품어주신 것입니다.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요일 4:7,10)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일, 영혼을 사랑하는 일은 위대한 것입니다. 남이 하는 것은 나도 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지만 남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일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세상 사람들이 다합니다. 그러나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결론: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용서의 삶을 사는 믿음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과 영혼을 사랑하는 믿음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평가하는 일은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의 조건이나 겉모습이나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나 어떤 조건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용서하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속에는 주님의 모습이 이루어 집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랑과 용서를 품고 사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같은 믿음의 능력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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