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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중요합니다.
운영자 2017-05-21 추천 0 댓글 0 조회 42

설교본문 막15:24~27 설교제목: 십자가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모든 성도들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은 십자가는 중요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이유 네 가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1. 질투심 때문에 배신했다는 것이다.

가롯 유다는 12 제자 중 높은 지위를 차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처럼 친밀한 그룹에 들지 못했다. 그 때문에 까닭 없는 질투심이 생겨서 그 질투심은 노를 격동했고 이 격노가 마침내 미움으로 변하여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심리학적인 해석이다.

2. 유다의 판단 착오설이다.

유다는 정세 판단에 밝은 사람이다. 자신의 판단으로서는 당시의 사태가 점점 로마 정부와 예수님과의 정면 충돌이 불가피해져 감을 느꼈고 그 충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격화되어 갈 것으로 판단한 유다는 예수님을 로마군에 일찍 넘겨주어 감금시켜 더 크고 격화된 충돌을 피하려고 배반했다는 것이다.

3. 예수님의 대한 기대가 어굿나 배반했다는 설이다.

유다는 과격한 국수주의자로 로마인을 무슨 수단으로든 팔레스틴 땅에서 추방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이 유다가 예수님의 능력과 교훈과 행동을 보고 예수님을 통해 자기 꿈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 했으나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택하심을 보고 자기의 기대가 어긋났다고 판단해서 배반했다는 것이다.

4. 돈에 대한 탐욕설이다.

돈에 탐욕심이 나서 즉 은 30이 그의 눈을 가려 예수를 팔게 된 것이라는 설이다. 탐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서의 기록은 가롯유대에 붙은 것은 도적입니다. 마치 도적이 고유명사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12: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을 열심히 따랐던 가롯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가 명예와 돈이었다. 때문에 반역자가 되었고 배신자의 행동을 낳게 된 것이다.

가롯 유다는 겉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그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그는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주님을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을 때는 믿음의 영적을 성장해야 합니다.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는 영적 세계를 알아가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잘 몰랐지만 차츰차츰 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러 오신 나의 주님으로 알아가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알았던 방식 그대로 성장했다고 볼 수 없는 여전히 예수님을 내 사업이나 내 가정이 내 가족의 지켜주고 잘되게 하는 수호신처럼 생각하는 방식이라면 그는 영적으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라도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은 아닙니다.

 

어느 시골에 물질적으로 유복한 가정이 있었다. 남편은 어찌하든지 돈을 벌고 물질로 성공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아침 일찍 들에 나가면 저녁 늦게 들어와 잠자리에 드는 단조로운 생활을 했다. 그런데 다정다감하게 예술을 논하고 여행을 즐기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그런 생활에 불만족스러워 남편에게 함께 여행을 하자고 늘 간청을 했지만 남편은 무뚝뚝한 태도였다. 그런 남편의 태도에 아내는 탄식을 하다못해 소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부인은 시름시름 앓다가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고 말았다. 맹장을 수술한 뒤에도 부인은 회복되지가 않아 마침내 의사는 사형선고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부인이 살려는 의지가 없어 극도의 빈혈로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이 자기의 팔을 걷고 수혈을 해주라고 의사에게 요청했다.

다행히 같은 형의 피였지만 시골 병원이었으므로 남편의 팔에서 아내의 팔로 직접 수혈을 해야만 했다. 남편이 말이 없는 가운데서도 자기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속에 온갖 미운 감정을 씻어내고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이 크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진심으로 내 입에서 나와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열정과 뜨거움이 내 마음속에 불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일이라면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고 교회를 보아도 성도들을 보아도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때마다 좋아요. 기뻐요. 훌륭해 보여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내 속에 충만한 증거가 됩니다.

 

십자가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십자가가 예수님이라고 말씀 드리느냐 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진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곧 부활로 일어났는데 그 부활은 영원한 부활이며 우리의 생명이 부활의 은혜를 입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하여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화목케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완성되었습니다.

막혀있던 담이 허물어지는 십자가였습니다.

인생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온 것을 안다면 십자가에서 내 죄로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셨기에 내가 죄사함 받은 것도 알아야 하고 화장터의 화로에서 언제인가 육신의 몸 또한 한 줌의 재가 되어 먼지처럼 사라질 육신임을 알고 있다면 언제인가 가야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나의 본향이라는 있다는 것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를 생각하지 않는 십자가를 바라보면 단지 형틀일 뿐입니다.

그것도 잔인하고 무서운 형틀일 뿐입니다.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무서운 형틀입니다. 마음에 예수 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우상일 뿐입니다.

어떤 중국인이 39년 동안이나 아편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편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때는 그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나는 이길 수 없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끝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편에 눈을 돌려 초점 을 맞추었을 때에는 아편의 종이 되었지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돌려 고정시켰더니 위대한 그 분의 종이 되었습니다."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십자가에서 씻으셨습니다. 사하셨습니다. 용서하셨습니다. 덮으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본문에서 십자가에서 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겉옷을 서로 가지려는 로마병사들의 제비뽑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육신의 정욕에 붙들려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육의 삶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 사도인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라고 한 것입니다.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개정성경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5:5) 당신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며 지냈고 도살당할 날을 눈앞에 두고도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라고 공동번역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것은 예수님만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인 된 인간을 죄 없게 하시기 위해서는 죄 없는 이가 대신 죽어야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로 죽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평생을 노력해야 할 일이 예수님을 아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하여 사람들은 외치기 시작합니다.

(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 잔인하고 무서운 십자가에 사람을 못박아 죽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간이 잔인한가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얼마전에 인도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인도의 한 흰두교 젊은 여성이 교회를 갔다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처녀를 발로 짓밟고 두들겨 패고 나중에서는 휘발유를 그 몸에 붙고 산채로 불을 붙여 사람을 태워 죽이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빙둘러서서 지켜보며 구경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보게 됩니다. 거기다 기름을 더 붓고 불을 붙이는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피에 굶주린 맹수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두 죄수가 예수님 좌우편에 못박혔습니다.

(15: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들은 자기들의 죄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의 한 사형수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회개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형수는 처형당하는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무지한 것입니다. 미련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내용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내 안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예수안에 살아간다면 십자가는 곧 나로 하여금 생명의 길이 되신 예수님이시고 천국의 길이 되신 예수님이시고 은혜의 길이 되는 십자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성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택함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확증된 일임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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